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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화 얼마나 강한 거야?
장내는 여전히 고요했다.
백발여인은 여전히 바둑돌을 내려다보며 묘수를 생각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소복의 여인은 이를 묵묵히 기다렸다.
이 두 여인은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사경이 곁에 왔는데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사경은 어깨너머로 바둑판을 내려다보았다. 바둑판 위에는 겨우 대여섯 개의 바둑알만이 존재했다.
일반인이 보기엔 아직 ‘포석’ 단계에 불과한 상황.
이때, 백발여인이 돌을 집어 던졌다.
“졌습니다.”
졌다고!?
이 장면에 사경은 어이가 없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한데 어떻게 승패가 갈릴 수가 있단 말인가?
소복의 여인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막 떠나려는 이때, 백발여인이 물었다.

“집짓기를 EOS파워볼 시작한 순간부터였습니까?” 자리에 멈춰 선 소복의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내게 대국을 요청한 그 순간 이미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이 말에 백발여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단 말입니까?” “…내가 져봤을 것 같나?” “…….”
소복의 여인은 그대로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때였다. 로투스바카라
“한번 겨뤄 보고 싶습니다.” 백발여인의 말에 소복의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넌 내 적수가 되지 못한다.” “…….”
이때, 한쪽에서 듣고만 있던 사경이 웃으며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듣자 하니, 그대가 하는 말이 꽤나 광오하구려.” 바로 이때, 백발여인이 손을 휘둘렀다.
짜악-! 로투스홀짝
사경이 미처 반응하지도 못한 순간, 그의 육신이 쩍 갈라지면서 영혼만 남게 됐다.
사경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이때, 백발여인이 사경을 흘겨보며 말했다.
“내가 어르신과 대화 하는데 너 같은 벌레가 끼어들면 쓰겠느냐?” 벌레!?
이 말에 충격을 받은 사경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 여인의 눈에는 자신이 벌레일 뿐이라는 소린가!
혹시 잘못 들은 걸까?
그건 절대 아니었다. 오픈홀덤

상대가 가볍게 휘두른 공격도 막아내지 못했는데 벌레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아니, 이건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백발여인이 소복의 여인을 향해 ‘어르신’이라 불렀다는 점이었다.
그 말은 즉, 소복의 여인이 이 백발여인보다 더 강하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상황을 파악한 사경은 문득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이때, 소복의 세이프게임 여인이 걸음을 멈추고 정면의 폐허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곳에서 전쟁이 있었던 건가?” 백발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졌군.”
백발여인이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졌습니다.”
이때, 소복의 여인이 손으로 허공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엽현을 닮은 형상이 그려졌다.
백발여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소복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무슨 뜻입니까?”
“훗날, 저 사람이 이곳에 지나가게 되거든 불편하게 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백발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소복의 여인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에 백발여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소복의 여인이 갑자기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아직도 지난날의 허상에 사로잡혀 있다면 어찌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느냐?” 이 말을 들은 순간, 백발의 여인이 흠칫 놀라면서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잠시 후,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웠다.

허상!
지금껏 과거에 사로잡혀 전진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백발여인은 고개를 들어 먼 곳을 응시했다. 하지만 이때 소복의 여인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백발여인은 쥐었던 주먹을 천천히 폈다.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을 통해 한 줄기 강력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이 기운이 출현함과 동시에 그녀 주변에 있던 것들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라지는 것에는 심지어 그녀의 시차원도 포함돼 있었다.
“마가신력(摩柯神力)!”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사경이 경악에 찬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렇다면 당신은… 영생계의 마가신녀(摩柯神女)?” 이때, 백발여인이 고개를 돌려 사경을 쳐다보았다.
“날 알고 있느냐?”
여인의 입을 통해 정체를 확인한 순간, 사경이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마가신녀!
한때 영생계 최강자로 군림하던 존재!
당시 그녀의 마가신족(摩柯神族)은 영생계 최대의 세력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하룻밤 사이 부족 전체가 모습을 감췄고, 다시는 영생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경이 마가신족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엽족에 대해 조사하면서였다.
그런데 과거 영생계 최강자라고 여겨지던 인물이 이런 곳에 생존해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그런 마가신녀가 소복의 여인을 ‘어르신’이라 부르며 떠받들 줄이야!
사경은 지체 없이 돌아서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시라도 빨리 이유족에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소복의 여인은 자신들이 감히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엽신에 비해 상대하기가 수월한 줄 알았던 엽현에게 이런 거대한 배후가 있다는 걸 누가 예상이라도 했을까?
바로 이때, 마가신녀가 가볍게 소매를 펄럭였다.
펑-!
막 자리를 빠져나가려던 사경은 이 한 번의 손짓으로 그 자리에서 소멸했다.
‘부족이 위험해…….’ 이것이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호숫가, 대나무집.
집 밖에는 사백육십여 명의 가짜 의경 강자들이 의경에 도달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었다.
한편, 방 안에는 엽현이 가부좌를 튼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이때의 엽현은 월야와의 교전을 머릿속에 복기하는 중이었다.
엽현은 자신의 실력이 월야와 같은 강자에 비해 여전히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혈맥지력과 수신결이 아니었더라면, 발검술만으로 대적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아직 멀었어!’
엽현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족을 상대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건만 영생계의 엽족은 또 뭐란 말인가!
잠시 후, 방에서 나온 엽현은 호숫가 근처에 자리를 잡고 섰다.
그가 손을 펼치자, 손바닥 안에 단검의 형태를 띤 영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주령!
청삼남은 이 검주령을 주면서 사용하기만 하면 이유인 정도는 큰 힘 들이지 않고 제거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일까?
엽현은 고개를 저으며 검주령을 품 안에 갈무리했다.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요청하면서 부친이나 청아 정도의 고수가 되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바로 이때, 엽현은 문득 엽신을 떠올렸다.
도일이 말하길 당시 엽신을 따르던 무리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바로 이때, 여인 하나가 엽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상대의 모습을 본 순간, 엽현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소막, 드디어 의경이 됐구나!” 소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녀는 이미 의경에 도달한 상태였다.
소막이 의경이 됐다는 것은 엄청난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살수인 그녀는 동일 경지의 강자 정도는 쉽게 암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이번에는 도일이 엽현 곁에 나타났다.
“혹시 사람이 필요해?”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개해 줄 사람이라도 있어?” 도일이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따라와.”
도일이 앞장서자, 엽현은 소막과 함께 그 뒤를 쫓았다.
잠시 후, 세 사람은 어느 대전 앞에 도착했다.
엽현은 분명 이곳에 와 본 기억이 있었다.
당시, 도일은 이곳에 엽신을 따르던 두 명의 강자가 있다고 했었다.
아비도검자!
그리고 목성도자!
도일은 엽현을 데리고 아비도검자의 조각상 앞에 섰다.
“그때 내가 왜 이들을 깨우지 못하게 했는지 알아?”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후후, 왜냐하면 너무 강하기 때문이야.” “얼마나? 의경 정도의 강자인가?” 도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의경도 아니고 의경 절정의 강자들이야. 게다가 가장 처음부터 주인을 섬기던 인물로, 아마 영생계에서부터 주인을 따라나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도일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 깨워 봐.”
“깨워? 어떻게?”
엽현의 물음에 도일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깨어나라고 한 마디만 말하면 돼.” 이에 엽현이 아비도검자를 향해 똑바로 섰다.
“깨어나라!”
쾅-!
순간, 조각상이 폭발하면서 검을 든 남자 하나가 엽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전신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압박감을 풍기고 있었다.
뒤이어 흐리멍덩하던 아비도검자의 눈동자가 생기를 띤 순간, 남자가 엽현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주군을 뵈옵니다!”
주군!
엽현은 눈앞의 아비도검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을 주군이라 부른 것을 보면 엽족에서부터 엽신을 섬기던 무인이 맞는 듯했다.
“일어나시오.”
자리에서 일어난 아비도검자는 엽현을 보며 복잡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주군…….”
“여전히 나를 따르기를 원하시오?” 이 질문에 아비도검자가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속하, 영원토록 주군을 섬기리라 맹세하였습니다!” 이 말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은 이번에는 목성도자의 조각상 앞으로 이동했다.
“깨어나라!”
쾅-!
마찬가지로 조각상이 터지면서 팔이 한쪽뿐인 여인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목성도자!
정신을 차린 목성도자는 엽현을 보자 다시 눈빛이 멍해졌다.
엽현은 말없이 목성도자가 무슨 말이라도 하길 기다렸다.
잠시 후, 목성도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직 각성한 상태가 아니군.” “나와 함께 하겠소?” 엽현의 물음에 목성도자가 재차 고개를 저었다.
“지금의 그대는 주군이라 할 수 없다.” “음,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잘 가시오.” 엽현은 주저하지 않고 돌아섰다.
상대를 강요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이때, 도일이 웃으며 엽현을 불러 세웠다.
“잠깐!”
엽현이 돌아서자, 도일이 목성도자를 향해 말했다.
“목성, 주인은 영생계로 복귀하길 원하시오.” 영생계로의 복귀!
이 말을 듣자 목성도자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뒤이어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이 말이 사실인가?” 엽현이 무어라 대답하려는 순간, 도일이 말을 가로챘다.
“주인, 어차피 엽족과의 일전은 피할 수 없어. 주인의 정체가 탄로 나는 순간, 저들은 반드시 주인을 죽이려 들 거야.” 엽현은 목성도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가 영생계로 가지 않는 한 그대도 나를 따르지 않겠지?” “…….”
“보아하니 그런 것 같군.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엽현은 다시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주군!”
목성도자의 외침에 엽현이 다시 뒤돌아섰다.
이때, 목성도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주군, 이미 결과는 나와 있습니다. 당시 주군께서 영생계를 떠날 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저들은 그때처럼 주군을 죽여 화근을 없애려 들 게 뻔합니다. 환생하여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고 있소.”
“그때의 주군은… 지나치게 정에 휘둘리는 사내였습니다.” 엽현이 웃으며 대꾸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은 없을 거요.” 이에 잠시 엽현의 눈을 바라보던 목성도자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지금부터 주군을 따르겠습니다.” 목성도자의 이 말에 엽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걱정하지 마시오. 당시의 엽신은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자였지만, 나 엽현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오. 누가 나를 건드리면 두 배, 아니 세 배로 돌려줄 것이오!” 잠시 후, 엽현은 새로 합류한 두 무인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이유계의 어느 산봉우리.
월야가 손에 쥔 두루마리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두루마리 안의 내용은 간단했다.
: 사경 사망.
하지만 소복의 여인에게 죽은 것이 아니라 정체 모를 백발의 여인에게 죽은 것으로 돼 있었다.
백발의 여인, 이 여자는 또 뭐란 말인가?
그녀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첩보에 나선 정보원들은 감히 그녀에게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경이 이 여인에게 죽었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이때, 월야 뒤편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족장께서 출관하셨습니다.” 족장의 출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월야가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소복의 여인… 그 여자는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이 한 마디를 남기고서 월야는 자리를 떠나갔다.”